나는 아무개가 되기 위해 다시 공항으로 향한다
여행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여행의 의미
사람들은 종종 여행의 의미를 거창하게 정의하곤 한다.
'Travel'이라는 단어가 'Travail(고통, 노고)'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인용하며, 고생 끝에 성장을 얻는 것이 진정한 여행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런 여행자는 아니다. 굳이 고생을 사서 하거나 엄청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떠나지 않는다. 나의 여행은 'Trip'과 'Tour' 사이, 그 어디쯤에 있는 가벼운 이탈에 가깝다.
평일 내내 나를 짓누르던 출근과 의무의 중력에서 벗어나, 낯선 공기를 마시는 해방감. 나에게 여행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왜 나는 여행을 떠날까
그렇다면 나는 왜 굳이 익숙하고 편안한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향하는가.
나를 공항으로 이끄는 가장 큰 동력은 '완벽한 익명성'에 대한 갈망이다. 서울에서의 나는 수많은 라벨을 달고 산다. 누군가의 직장 동료, 가족, 친구, 선배 혹은 후배.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수행해야 할 역할들이 나를 정의하기도, 때로는 옥죄기도 한다. 하지만 비행기가 이륙하고 낯선 도시의 공항에 내리는 순간, 그 모든 라벨은 떨어진다. 나는 철저히 아무것도 아닌 사람, 다시 말해 '아무개'가 된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 또한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그 완전한 자유. 그 홀가분함은 언제나 중독적이다.
그렇게 낯선 이방인이 되었을 때, 비로소 나의 감각이 5개였음을 깨닫는다. 익숙한 출근길에서 우리의 뇌는 에너지를 아끼려 '절전 모드'로 전환하지만, 여행지에서는 다르다.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오감이 곤두선다. 낯선 언어의 소음, 향신료 냄새, 서울과는 다른 각도로 비치는 햇살까지. 여행지에서의 하루가 일상의 일주일보다 길고 밀도 있게 느껴지는 건, 바로 이 살아있는 감각들 때문이다.
나는 이 감각을 온전히 소유하기 위해 나만의 작은 의식을 치르곤 한다. 마음에 쏙 드는 장소를 발견하면, 가만히 자리를 잡고 앉아 눈을 감는다. 시각이라는 가장 강력한 정보를 차단한 채, 오로지 소리에만 집중해 보는 것이다.
눈을 감으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들려온다. 저 멀리 지나가는 트램의 마찰음, 누군가의 굽 소리, 옆 테이블에서 들리는 알 수 없는 언어의 높낮이. 나는 그 소리들을 재료 삼아 머릿속으로 풍경을 그려본다.
'저 발소리의 주인공은 어디로 바쁘게 가는 걸까?', '이 목소리의 톤은 연인일까, 비즈니스 파트너일까?'
그렇게 한참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눈을 떴을 때, 상상과 현실이 겹쳐지는 그 순간의 전율은 그 장소를 영원히 잊지 못하게 만든다. 그것은 사진으로 남기는 인증보다 훨씬 진한 각인이다.
여행이 끝나고
여행이 끝나고 짐을 쌀 때면 아쉬움과 함께 묘한 다짐이 생긴다.
여행지에서 만난 수많은 '프로'들 때문이다. 나에게는 낭만적인 여행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삶의 터전인 그곳. 수많은 관광객을 상대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호텔리어, 능숙하게 골목을 누비는 버스 기사, 묵묵히 빵을 굽는 제빵사들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저 사람들은 진짜 프로구나.'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은 나에게 건강한 자극이 된다. 나도 돌아가면 내 자리에서 더 프로답게 일해야지. 그렇게 열심히 벌어서, 다시 이 멋진 곳으로 돌아와야지.
결국 여행은 나에게 도피가 아닌 충전이다. 다음의 노동을 가능하게 하고, 그 노동은 다시 다음의 여행을 꿈꾸게 한다.
그렇게 다시 나를 정의하던 라벨을 다시 누르고 출근한다. 다음 '아무개'가 될 여행지를 상상하며.